역사적 배경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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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YMCA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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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1914년 대구에서만 40여년간을 선교사역을 하신 미북장로교선교부 소속 부해리(H.M.Bruen) 선교사의 제안과 방혜법 선교사(H.E.Blair)의 감독하에 건축되었다. 1914년 5월 선교본부에 제출된 브루언의 YMCA설립계획에는 이 조직이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구체적이고 심도있게 증거하는 적합한 그릇이며 복음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청년들의 요구를 조직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것이라고 기술되어져있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청년 남녀로 과학적 또는 영적으로 교육하여 학교나 일반사회에 기독교인적인 선구자가 되게함’ 『계성 90년사』,1997,78-80
이라는 설립목적을 지니고 1906년과 1907년에 각각 개교하여 1913년부터 최초의 졸업생을 배출한 계성학교과 신명여학교 출신의 학생기독청년을 위한 선교 방안을 수립해야 당시 선교부의 상황과도 명확히 부응한다.

대구YMCA의 최초 발기인 명단을 살펴보면 회장 이만집,부회장 정광순,총무 김태련,명예총무 블레어,김덕경 장로 등 교계지도자 이외에는 전부 당시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의 교사들로 구성되어져 있고 『계성 100년사』,『신명 100년사』, 본 회의 초대회장인 이만집목사 역시 계성학교 최초 한국인 교사이자 전직교감이었으므로 YMCA의 주요임원 조직구성이 학생 및 청년 선교에 중점을 둔 임원구성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1914년에 세워진 교남YMCA회관의 설립목적은 브루언의 전기‘한국에서의 40년’에서 대구지역 교회청년들의 조직과 비기독교청년들의 기독교신앙으로의 초대였다고 밝혀놓았듯이 지역교회와 미션스쿨 및 비기독교인들까지도 대상으로 하는 폭넓은 학생청년선교운동체의 건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